백로(白露)는 24절기 가운데 열다섯 번째 절기다.
백로는 태양이 황경 165도에 이르는 절기로, 대략 9월 7일에서 9일 사이에 든다. 아침이 충분히 서늘해져 풀잎에 수증기가 맺혀 또렷한 흰 이슬이 되니, 이 절기의 이름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민속으로는 백로차를 마시고, 신장과 혈을 보하기 위해 용안을 먹는 풍습이 전해진다. 기후상으로는 중국 북부에서 진짜 서늘한 가을이 시작되며, 과일이 익기 시작하는 때이다.
백로의 ‘백(白)’은 이슬방울의 색깔을 묘사한 말이 아니라 오행(五行) 배속에서 나온 용어이다. 전통적으로 사계절을 다섯 방위와 다섯 빛깔에 짝지었는데, 가을은 금(金)에 속하고 서쪽에 자리하며 그 색은 흰색이다. 『이아(爾雅)』 석천 편이 사계절을 각각 청양·주명·백장·현영(靑陽·朱明·白藏·玄英)이라 부른 것도 이 배색에 따른 것이며, 백로라는 이름 역시 바로 이 배색에서 나왔다. 『시경(詩經)』 진풍의 ‘겸가’ 편이 “갈대는 푸르른데 흰 이슬은 서리가 되었네”라는 구절로 노래의 흥을 일으키는 것은 이 말이 문학에 들어온 유명한 예이다. 백로를 ‘흰색 이슬’로만 읽으면 이름 뒤에 놓인 논리를 놓치게 된다.
백로는 ‘절(節)’에 해당하는 절기여서, 절입하는 순간 월주(月柱)가 바뀌어 월지가 신(申)에서 유(酉)로 넘어가고 가을 석 달은 한가운데 구간에 접어든다. 유는 자(子)·묘(卯)와 더불어 본기(本氣) 하나만을 품은 지지에 속하며, 품은 것은 오직 신금(辛金)뿐 다른 기운이 섞이지 않는다. 그래서 유월(酉月)의 금은 한 해 가운데 가장 순수한 구간이다. 이 점은 명을 논할 때 매우 실제적인 의미를 갖는다. 신월(申月)의 금은 아직 임수와 무토를 함께 끌고 있지만 유월에는 그런 완충이 없어, 일간과 용신(用神) 사이의 관계가 더 직접적이고 날이 선 모습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유를 둘러싼 몇 가지 관계는 명식을 읽을 때 늘 꺼내 쓰는 도구이다. 신금은 유를 녹(祿)으로 삼고, 경금은 유를 양인(羊刃)으로 삼는다. 사유축(巳酉丑)은 삼합하여 금국을 이루는데, 유가 그 가운데에 자리한 국신(局神)이다. 진유는 육합이며 전통적으로 금으로 화한다고 본다. 묘유는 상충하는데, 사정(四正)의 충 가운데 금과 목이 마주 선 가장 전형적인 경우이다. 백로 이후에 태어난 명조의 원국에 신·술이나 사·축이 더 보이면 금의 세력이 한 덩어리로 이어지는 일이 많다. 이때 설기하여 빼낼지, 제어하여 누를지, 아니면 그 왕성한 기세를 따를지는 유파마다 길이 다르므로, 월령(月令) 하나에만 기대지 말고 전체 국면을 함께 살펴야 한다.
백로를 어떤 구체적인 기온의 문턱으로 여기는 것은 흔한 오해이다. 이슬이 맺히는 것은 지표면의 복사 냉각과 습도에 달려 있어 맑고 바람이 적은 밤에야 뚜렷해지며, 절기의 이름이 기록하는 것은 기후의 장기 평균이지 어느 하루의 조건이 아니다. 또 다른 오해는 백로와 한로를 같은 현상의 정도 차이로 보는 것이다. 명리에서 둘은 서로 다른 월주에 속한다. 백로는 유월을 열고 한로는 술월(戌月)을 열며, 지장간의 구조와 쓰임이 전혀 다르므로 ‘이슬이 더 차가워졌다’는 정도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고서를 찾아보면 절기 날짜가 오늘날의 것과 맞지 않는 경우가 흔한데, 그 원인은 산법이 바뀐 데 있다. 명대까지는 평기법(平氣法)이 통용되어 한 회귀년의 시간을 스물넷으로 균등하게 나누었고, 청나라 초에는 정기법(定氣法)으로 바꾸어 태양이 황도 위를 15도씩 나아갈 때마다 한 기(氣)로 삼았다. 지구의 공전 속도가 고르지 않기 때문에 두 방법이 내놓는 날짜는 하루 이상 차이가 날 수 있다. 그러므로 옛 역서의 백로 날짜를 인용할 때는 그것이 어느 산법에서 나온 것인지 먼저 확인해야 하며, 현대의 절기표와 곧바로 대조해서는 안 된다.
백로의 삼후(三候)는 홍안래(鴻雁來)·현조귀(玄鳥歸)·군조양수(群鳥養羞)로, 세 후가 모두 새를 이야기한다. 기러기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날아오고, 제비가 남쪽으로 돌아가며, 뭇 새들이 먹이를 저장하기 시작한다는 뜻인데, 여기서 ‘수(羞)’는 먹을거리라는 뜻으로 쓰였다. 철새의 움직임으로 절기를 표시한 것은 72후 가운데서도 꽤 대표적인 한 묶음이며, 고대의 물후 관측 기준점이 황하 유역에 있었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같은 후를 중국 남부의 영남(嶺南) 지방이나 동북 지방에 그대로 옮겨 놓으면 시기가 맞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이슬 자체에는 색이 없습니다. ‘백(白)’은 오행의 배색에서 온 것으로, 가을은 금에 속하고 서쪽에 자리하며 그 색이 흰색이기 때문에 가을 이슬을 백로라고 부릅니다. 『이아(爾雅)』 석천 편이 사계절을 청양·주명·백장·현영이라 부른 것도 같은 논리입니다. 이 점을 이해하면 가을과 관련된 여러 사물의 이름에 왜 ‘백’ 자가 붙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오행의 귀속을 나타내는 것이지 실제 색깔을 묘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뀝니다. 백로는 ‘절(節)’에 해당하므로 절기가 드는 그 순간 월지가 신(申)에서 유(酉)로 넘어갑니다. 유는 지지 가운데 본기인 신금(辛金) 하나만을 품고 다른 기운이 섞이지 않아, 가을 중에서 금기가 가장 순수한 구간입니다. 이에 비해 신월은 임수와 무토도 함께 지니고 있으므로 두 달의 취용 방식은 서로 다르며, 같은 가을에 속한다고 해서 하나로 뭉뚱그려 논할 수는 없습니다.
이름만 보면 이슬이 서늘함에서 차가움으로 바뀐다는 차이지만, 실질적인 차이는 그보다 큽니다. 백로는 태양 황경 165°에 들어 유월을 열고, 한로는 195°에 들어 술월을 엽니다. 유는 순수한 금인 반면, 술은 무토·신금·정화를 품은 화(火)의 묘고(墓庫)로, 늦가을이라 토의 기운이 무겁습니다. 둘은 한 달 간격이지만 월주가 다르고 지장간의 구조와 명을 논하는 쓰임도 전혀 다르므로, 같은 현상의 정도 차이가 아닙니다.
대개는 잘못 기록한 것이 아니라 산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청나라 초 이전에는 평기법(平氣法)을 써서 한 해의 시간을 스물넷으로 균등하게 나누었고, 그 뒤로는 정기법(定氣法)으로 바꾸어 태양이 황도 위를 15도 나아갈 때마다 한 기를 정했습니다. 지구의 공전 속도가 고르지 않기 때문에 두 방법의 날짜는 하루나 이틀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옛 역서와 비교할 때는 먼저 그 역서가 어떤 산법에 근거했는지 확인한 뒤 환산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오류로 잘못 판단하기 쉽습니다.
월령에서 금이 왕하다는 것은 환경으로서의 기후를 말해 줄 뿐, 그 명조의 금이 반드시 강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일간이 어떤 오행인지, 사주의 나머지 일곱 글자가 어떻게 생하고 극하는지, 금이 천간에 투출하고 지지에 뿌리를 두었는지, 화의 제어나 수의 설기가 있는지가 모두 결론을 바꿉니다. 전통적인 명리는 월령을 출발점으로 삼은 뒤 전체 국면을 함께 봅니다. 태어난 절기만으로 오행의 왕쇠를 판정하는 것은 요령을 부리는 것이지 올바른 방법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