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清明)은 24절기 가운데 다섯 번째 절기다.
청명은 태양이 황경 15도에 이르는 절기로, 대략 4월 4일에서 6일 사이에 든다. 이십사절기 가운데 유일하게 중국의 중요한 전통 명절(청명절)을 겸하는 절기이다.
민속으로는 가족들이 조상의 묘를 찾아 손질하고, 음식과 꽃을 올리며, 종이돈을 태우는 풍습이 전해진다. 들로 나가 봄을 즐기는 "답청(踏青)" 역시 전통이다. 기후상으로는 하늘이 맑고 꽃이 피어, 야외 활동에 알맞은 때이다.
청명이 절기이면서 동시에 명절이라는 두 겹의 성격을 지니게 된 것은 오래된 세 가지 명절 풍속이 차츰 하나로 합쳐진 결과이다. 한식은 불을 피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 날로, 청명보다 하루이틀 앞선다. 상사(上巳)는 물가에서 몸을 씻어 부정을 떨치고 봄나들이를 나가는 날로, 시기 역시 크게 떨어져 있지 않다. 당·송 무렵 한식과 청명의 휴일이 이어지자 상사의 봄나들이 풍습도 함께 따라붙었고, 결국 청명이 이를 모두 흡수하면서 오늘날처럼 성묘와 답청이 같은 날 나란히 행해지는 모습이 자리 잡았다.
청명절은 흔히 ‘매년 4월 5일’로 기억되지만, 실제 날짜는 절기가 드는 시각에 따라 정해지므로 4월 4일에서 6일 사이를 오가며, 윤년 전후에는 특히 4월 4일에 들기 쉽다. 더 눈여겨볼 점은 청명이 중국 전통 명절 가운데 태양의 위치로 날짜를 정하는 극히 드문 예라는 것이다. 단오·중추절·춘절은 모두 음력으로 날짜를 정하지만 청명은 태양을 따라가므로, 양력에 비추어 보면 오히려 이들보다 안정적이다. 성묘하는 기간은 지역마다 말이 한결같지 않다. 청명 당일로 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사흘 전부터 나흘 뒤까지인 ‘전삼후사’를 따르는 곳도 있고, 이레 전부터 여드레 뒤까지인 ‘전칠후팔’이나 아예 음력 3월 한 달 전체를 기간으로 삼는 곳도 있다. 복건·광동 일대의 일부 문중은 따로 날을 잡아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며 청명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러한 차이는 대개 문중의 관례와 농사 일정에 맞추다 보니 생겨난 것으로, 전통 속에서 전국에 두루 통하는 기준이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으며, 억지로 하나로 맞추려 드는 것은 오히려 실정에 맞지 않는다.
옛사람들은 ‘청명’이라는 이름을 대체로 날씨가 맑고 밝으며 만물이 깨끗하고 환하게 빛난다는 뜻으로 풀이하였는데, 이는 이 무렵 자연의 모습과 잘 들어맞는다. 삼후는 동시화(桐始華), 전서화위여(田鼠化爲鴽), 홍시견(虹始見)이다. 오동나무 꽃이 피어나고, 들쥐가 자취를 감추는 대신 메추라기를 닮은 작은 새인 여(鴽)가 자주 눈에 띄며, 비가 갠 뒤 처음으로 무지개가 보인다는 뜻이다. 둘째 후의 표현은 칠십이후에서 관용적으로 쓰는 ‘화(化)’ 자 어법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삼후 역시 식물에서 동물로, 다시 하늘의 현상으로 한 단계씩 펼쳐진다.
명리에서 청명은 ‘절(節)’에 해당하여, 청명에 들면 묘월에서 진월로 넘어가고 월주가 바뀐다. 진은 물을 저장하는 창고인 수고(水庫)로 여겨지며, 지장간으로 무토·을목·계수 세 가지를 품고 있어 묘월보다 성질이 훨씬 복잡하다. 목의 기운은 이미 가장 왕성한 고비를 넘겨 여기(餘氣)로 남고, 토의 기운이 고개를 들며, 습한 토는 금을 생할 수도 있고 화를 어둡게 가릴 수도 있다. 청명 이후에 태어난 명조를 볼 때 전통적으로는 ‘토왕목퇴(土旺木退)’, 곧 토가 왕성해지고 목이 물러나는 전환점에 주목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묘월처럼 목만 단순하게 왕성한 격국을 다루는 방식과는 다르다. 춘분·청명·곡우를 이어서 보면, 춘분은 묘월의 중기(中氣)이고 청명은 진월이 시작되는 절이며 곡우는 진월의 중기이다. 따라서 청명은 이 기간 가운데 월주를 바꾸는 유일한 마디이자 봄의 마지막 달이 시작되는 기점이기도 하다. 청명에서 입하에 이르는 30일은 전통적으로 봄의 목이 여름의 화에게 바통을 넘기기 전의 과도기로 여겨지며, 그사이 토의 기운이 점차 주도권을 잡아 간다.
청명의 날짜는 절기가 드는 시각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태양이 황경 15도에 이르는 날이 곧 청명이며, 양력으로는 4월 4일에서 6일 사이를 오가고, 윤년 전후에는 특히 4월 4일에 들기 쉽습니다. 단오나 중추절처럼 음력으로 날짜를 정하지 않고 태양을 따라가므로, 양력에 비추어 보면 오히려 대부분의 전통 명절보다 안정적입니다.
원래는 서로 다른 명절이었습니다. 한식은 불을 피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 날로 청명보다 하루이틀 앞서며, 그 기원도 청명절보다 이릅니다. 상사(上巳)는 물가에서 몸을 씻어 부정을 떨치고 봄나들이를 나가는 날이었습니다. 세 날은 시기가 가까웠는데, 당·송 이후 휴일이 이어지고 풍속이 서로 스며들면서 한식과 상사의 내용이 차츰 청명에 흡수되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처럼 성묘와 답청이 청명 하루에 함께 행해지는 모습이 만들어졌습니다.
바뀝니다. 청명은 열두 ‘절(節)’ 가운데 하나여서, 절에 들면 묘월에서 진월로 넘어가고 사주팔자의 월주도 그에 따라 바뀝니다. 진은 물을 저장하는 창고인 수고(水庫)로서 무토·을목·계수를 품고 있어, 을목 하나만 품은 묘월과는 성질이 크게 다릅니다. 생일이 청명에 가까운 분은 그해 청명이 드는 정확한 시각을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 시각을 기준으로 앞뒤가 서로 다른 월령에 속하므로 왕쇠를 판단하고 용신을 취하는 데 뚜렷한 차이가 생깁니다.
전통적으로 전국에 통일된 규정은 없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으로는 청명 당일, 사흘 전부터 나흘 뒤까지인 ‘전삼후사’, 이레 전부터 여드레 뒤까지인 ‘전칠후팔’이 있고, 음력 3월 한 달 전체를 기간으로 삼는 경우도 있습니다. 복건·광동 일대의 일부 문중은 따로 날을 잡아 조상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이러한 차이는 대개 문중의 관례와 농번기 일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지역 관습에 따른 자연스러운 차이일 뿐 유일하게 올바른 날짜란 존재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