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름: Snake Branch
사(巳)는 십이지지의 여섯 번째 지지로, 뱀띠에 해당하며 사주에서는 음화(陰火)로 본다.
사(巳)는 음화로서 병(丙, 양화)·경(庚, 양금)·무(戊, 양토) 세 장간을 품는다 — 이미 금과 토를 품어 정련되기를 기다리는 불이다. 상(象)은 햇볕 드는 돌 위에서 몸을 사리고 있는 뱀이니, 아름답고 눈치가 빠르다. 사를 일주로 한 사람은 흔히 명민한 지혜와 말재주를 지니며, 전략적인 인내심으로 때를 기다려 움직인다고 본다.
사는 유(酉)·축(丑)과 삼합하여 금(金)으로 화하고(巳酉丑合化金), 신(申)과는 육합하여 수로 화하나 동시에 형의 관계이기도 하다(巳申合水, 겸하여 형刑의 관계). 해(亥)와는 상충하며(巳亥冲), 인(寅)·신(申)과 더불어 삼형을 이룬다(寅巳申).
사에서 가장 곱씹어 볼 만한 점은 금(金)의 출발점이 화(火)의 지지 안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오행의 십이운성(十二運星)은 경금의 장생(長生)을 사에 두는데, 정작 사 자체는 화에 속한다. 화는 금을 극하니, 장생의 자리를 자신을 극하는 곳에 두었다는 것은 언뜻 이치에 맞지 않아 보인다. 옛사람들은 이를 단련의 뜻으로 풀었다. 금은 불을 거치지 않으면 그릇이 되지 못하고, 광석이 용광로에 들어가야 비로소 진짜 금이 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 점을 받아들이면 사·유·축 삼합이 금으로 화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용광로의 불은 사에서 지펴지고, 유에서 가장 왕성해지며, 축에 갈무리된다.
이 장생의 줄기를 따라 더 내려가면 사주학에서 가장 큰 논쟁 하나와 마주치게 된다. 음간(陰干)의 장생을 어디서 일으키느냐는 문제다. 한 학파는 음과 양이 같은 자리에서 나고 같은 자리에서 죽는다는 음양동생동사(陰陽同生同死)를 주장하여, 을목도 갑목과 마찬가지로 해(亥)를 장생으로 삼고 사를 쇠절(衰絶)의 자리로 본다. 한 집안에 두 벌의 규칙을 둘 수는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다른 학파는 양은 순행하고 음은 역행한다는 양순음역(陽順陰逆)을 주장하여, 을목은 오에서, 정화와 기토는 유에서, 신금은 자에서, 계수는 묘에서 장생한다고 본다. 후대의 명리 총서에는 이미 두 설이 나란히 실려 있다. 두 배열법은 사라는 바로 이 자리에서 정반대의 결론을 내므로, 이를 근거로 논지를 세우려면 어느 쪽을 따르는지부터 밝혀 두는 것이 좋다.
사월(巳月)은 입하에 시작해 망종 직전에 끝나며, 중기는 소만이다. 보리 같은 곡식이 여물어 가되 아직 다 익지는 않았고, 더위가 일기 시작했으나 아직 혹독하지는 않은 때다. 병화는 사에서 임관(臨官)이 되고 무토도 마찬가지로 녹(祿)을 얻으므로, 사월은 화와 토가 함께 왕성한 달이다. 월령이 사인 명식을 풀 때 전통적으로 가장 먼저 살피는 것은 임수·계수에 의한 조후(調候)가 있느냐이다. 화와 토가 메마르고 뜨거운데 물이 없으면 옛사람들은 이를 초고(焦枯)라 불렀고, 물과 불이 서로를 이루는 수화기제(水火旣濟)가 되어야 귀한 기운이 이루어지기 쉽다고 했다. 여름에는 수를 쓰고 겨울에는 화를 쓰는 것, 이것이 조후법의 가장 기본적인 짝이다.
사는 인·신·해와 함께 사생지(四生地)에 속하며, 신살에서는 이를 역마라 부른다. 해·묘·미의 역마가 바로 사에 있다. 사생지의 지지는 시작과 이동을 주관하는데, 여기에 사 자체의 화의 성질이 더해져, 전통에서는 생각이 빨리 움직이고 한곳에 오래 머물려 하지 않는 기질로 묘사한다. 방위로 보면 사는 진과 함께 동남방에 자리하며 후천팔괘의 손괘에 배속된다. 손은 바람이자 들어감을 뜻하니, 이 상(象)이 역마의 움직임과 서로 호응한다. 다만 신살은 어디까지나 보조선일 뿐이다. 그 사가 일간에게 재성인지, 관성인지, 아니면 식상인지를 가리는 것이 본류다.
사와 신(申)의 조합은 지지의 관계를 구결처럼 외워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 준다. 사와 신은 육합이면서 형이고 또 해(害)이기도 하여, 세 겹의 관계가 똑같은 두 글자 위에 포개져 있다. 옛 법은 전제 조건을 살피는 방식으로 이를 다룬다. 두 지지가 바짝 붙어 있고 변화를 이끌어 줄 수(水)가 있으면 합의 의미가 무거워진다. 사주 안에 금과 수가 이미 왕성한데 충까지 받으면 형의 의미가 무거워진다. 둘이 각자 다른 지지에 붙들려 저마다 바쁘다면 서로 아무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지지의 관계는 등식이 아니라 조건문이며, 표를 찾아 얻는 것은 후보일 뿐이다.
사를 작은 불로 여기는 것은 ‘음(陰)’이라는 글자를 잘못 읽은 것이다. 음양의 음은 형태가 안으로 갈무리되어 있다는 뜻이지 힘이 약하다는 뜻이 아니다. 사는 병화의 임관지이므로 실제 화력으로 따지면 오에 뒤지지 않으며, 다만 오처럼 밖으로 내뿜지 않을 뿐이다. 또 하나의 오해는 뱀의 이미지를 그대로 성격 판단에 끌어들여 음침하고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으로 읽는 것이다. 전통 문헌의 경향은 오히려 정반대여서, 밝고 수려하며 민첩한 쪽에 기운다. 사에 배속된 시각은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로, 하루 가운데 햇살이 가장 청명하고 상쾌한 시간대다.
사시는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로, 해가 하늘 한가운데를 향해 올라가는 시간대입니다. 월령으로서 사는 절기력의 4월에 해당하며, 입하에 시작해 망종 직전에 끝나고 중기는 소만입니다. 그 상(象)은 더위가 이미 찾아왔으나 아직 오르는 중이어서 가장 성한 때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절기력에서 입하는 분명 사월(巳月)과 여름을 여는 절기이고, 사주팔자도 여기서 월주가 바뀝니다. 그러나 실제 기온으로 보면 입하는 가장 더운 시기보다 이르며, 본격적인 더위는 두 달 뒤의 소서와 대서에 가서야 찾아옵니다. 절기가 표시하는 것은 태양 주기의 마디이고, 계절의 이름이 말하는 것은 주기가 어디까지 왔는가이지 온도계의 눈금이 아닙니다.
십이운성에서 말하는 장생은 하나의 과정이 시작되는 지점이지, 편안한 자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옛사람들이 취한 것은 단련의 상입니다. 광석은 불에 들어가지 않으면 그릇이 될 수 없으니, 용광로에 불이 붙는 곳이야말로 금이 제 일을 시작하는 출발점이라는 것입니다. 사·유·축이 금국(金局)을 이루는 이치도 같아서, 사에서 일어나 유에서 왕성해지고 축에 갈무리됩니다. 이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이지, 목이 화를 생하듯 화가 금을 생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합·형·해(害) 세 가지 모두 고서에 기록되어 있으며, 실제로 어느 관계가 작용하는지는 명식을 보아야 압니다. 두 지지가 가까이 붙어 있고 변화를 이끌어 줄 수(水)가 있을 때는 육합하여 수로 화하는 쪽에 무게를 둡니다. 명식 안에 금과 수가 이미 왕성하거나 따로 충을 받을 때는 형에 무게를 둡니다. 옛 법은 이처럼 겹친 관계를 조건문으로 다루어, 월령과 두 지지 사이의 거리, 그리고 각 지지가 다른 지지에 얽혀 있는지를 기준으로 취사를 정합니다.
오는 한여름의 양화로, 밖으로 드러나고 뚜렷하며 사방으로 빛을 내뿜고, 정화와 기토를 품고 있습니다. 사는 화의 임관지로 형태가 안으로 갈무리되어 있으며, 병화 외에 경금과 무토까지 품고 있어 재료를 스스로 갖춘 불입니다. 오는 흔히 과시와 강렬함으로, 사는 정밀함과 계산으로 읽힙니다. 사가 둘 중 약한 쪽인 것이 아니라, 다만 겉으로 덜 드러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