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름: Yang Water · Ocean Water
임수(壬水)는 십천간의 아홉 번째로, 오행으로는 양수(陽水)에 해당한다.
임수는 양수로——큰 강, 푸른 바다, 절기의 홍수이다. 흐르는 물은 절벽을 뚫고 군대를 멀리까지 운반하며 사방을 연결한다. 임수를 일주로 하는 사람은 대체로 영민하고 견문이 넓으며 교류를 좋아하고 한 곳에 오래 머무르기를 꺼린다. 타고난 여행자이며 상인이며 박학한 선비이며 사람과 사람의 인연을 이어주는 자이다.
임수는 정화(丁火)와 합하여 "정임합화목(丁壬合化木)"을 이루는데——양수가 촛불을 만나 나무를 생하는 것으로, 감정의 절제 속에서 창조가 피어나는 것으로 풀이되는 경우가 많다. 임수는 반드시 무토(戊土)를 제방으로 의지해야 비로소 하천으로서 큰 쓰임을 이룬다. 제방이 없으면 범람하여 산만해지고 얽매임에 빠지기 쉽다.
임수 일주(日主)의 강약을 판단하려면 통근(通根)과 득지(得地)라는 두 가지를 구분해야 한다. 해(亥)는 임을 본기(本氣)로 삼으므로 진짜 뿌리를 준다. 신(申)의 지장간에도 임이 들어 있지만, 이는 여기(餘氣)의 뿌리에 해당한다. 자(子)는 물이 왕성한 자리이지만 그 속에 감춰진 것은 임이 아니라 계이며, 십이운성(十二運星)의 배열에 따르면 임은 자에서 제왕(帝旺)에 이를 뿐이다. 따라서 자가 주는 것은 득지이지 통근이 아니다. 둘 다 힘이 있는 것으로 치지만, 해에 뿌리를 둔 경우는 두텁고 견실한 반면 자만 얻은 경우는 왕성하되 쉽게 흔들린다. 신자진이 삼합하여 수국을 이루거나 해자축이 북방으로 삼회(三會)하면, 곳곳에 흩어져 있던 수기가 한 줄기로 모인다.
임과 계는 같은 물이지만 움직임과 고요함의 성격은 사뭇 다르다. 임은 강이자 기세이고, 계는 이슬이자 스며듦이다. 임이 정(丁)과 합하여 목으로 화하는 것은 촛불과 밤비가 짝을 이루는 형상으로, 옛사람들은 여기서 감정과 성정의 절제 속에서 창조가 생겨난다는 뜻을 취했다. 옛 명리서들은 오합(五合)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였는데, 정임 조합에 붙은 이름에는 폄하하는 색채가 담겨 있다. 이는 당시의 윤리관을 반영한 것이지 명주의 품성에 대한 기술적 판단이 아니며, 후대에는 대개 두 천간이 서로 끌린다는 상징적 의미만 취하고 그 도덕적 평가는 버렸다. 그렇지만 임과 관련해 가장 자주 논의되는 짝은 역시 무토이다. 앞에서 임은 반드시 무토를 제방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는데, 이 말에는 전제 하나를 덧붙여야 한다. 무는 제방을 쌓아 내달리는 물살을 하천의 물길로 만들 수 있지만, 동시에 임에게는 칠살이기도 하다. 같은 관계가 규범이 될 수도 있고 억압이 될 수도 있으며, 어느 쪽으로 읽을지는 전적으로 일주의 강약에 달려 있다.
“임수는 반드시 총명하다”, “임수는 반드시 정처 없이 떠돈다” 같은 단정은 취상(取象)을 곧 결론으로 삼아 버린 것이다. 지혜와 움직임은 임의 상징적 속성이며, 그것이 실제로 구현되는지는 인성(印星)이 있는지, 제화(制化)가 이루어지는지, 운의 흐름이 맞물려 주는지를 더 보아야 한다. 제방의 설도 같은 지점에서 넘어진다. 신왕(身旺)한 임이 무토를 제방으로 얻으면 성취가 되지만, 신약(身弱)한 임이 무거운 무를 만나면 칠살이 무거워 몸을 공격하는 살중공신(殺重攻身)이 된다. 같은 글자 하나가 두 가지 명식에서 정반대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구결(口訣)을 강약이라는 전제에서 떼어 내어 쓰는 것이야말로 초학자가 가장 자주 넘어지는 지점이다.
임을 곧바로 큰 강과 바다로 읽는 것은 사실 지름길로 간 셈이다. 한나라 때 천간의 이름을 풀이하면서 임은 흔히 짊어진다는 뜻의 ‘임(任)’, 아이를 밴다는 뜻의 ‘임(妊)’과 통한다고 보았는데, 이는 양기가 아래에 잠복하여 아직 형체를 드러내지 않은 것을 떠받치고 품어 기르는 상태를 가리켰다. 『설문해자(說文解字)』도 임을 풀이할 때 사람이 몸에 아이를 밴 형상을 취했다. 그러므로 가장 오래된 의미층에서 임은 품었으되 아직 드러내지 않은 것, 겨울철 땅 밑에서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움직임의 힘이다. 강과 바다는 나중에 생겨난 취상으로 매우 쓸모가 있지만, 임이라는 글자 밑바탕에 깔린 짊어짐과 잉태의 뜻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임수가 해·자·축월에 태어났을 때 용신(用神)을 취하는 두 갈래 길의 차이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조후(調候)를 따르는 쪽은 한겨울에는 물이 왕성하니 먼저 춥고 따뜻함을 따져야 하며, 병화로 명식을 데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억부(抑扶)를 따르는 쪽은 먼저 일주의 강약을 정해야 하고, 물이 이미 왕성하다면 토로 제어하거나 목으로 설기하는 것을 앞세우며 화는 뒤로 미뤄야 한다고 본다. 봄·여름 달의 임수에 대해서는 두 학파의 견해 차이가 크지 않지만, 한겨울에 이르면 서로 다른 용신을 내놓는다. 전통적인 처리 방식은 원국(原局)에서 어느 쪽 병이 더 급한지를 살피는 것이지, 어느 한 학파를 정통으로 미리 정해 두는 것이 아니다. 순전히 이론 체계상의 차이 하나도 임과 관련이 있다. 바로 천간끼리도 충(沖)이 있느냐는 문제이다. 한쪽은 천간에서는 생극과 오합만 논하면 되고, 방위가 마주 보는 천간은 상극이라 부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다른 쪽은 천간상충(天干相沖)의 설을 따로 세워, 갑경·을신·병임·정계처럼 일곱 자리 간격으로 방위가 서로 마주하는 천간 쌍을 충이라 부르고, 가운데에 자리한 무와 기는 여기에 넣지 않는다. 이 후자의 체계에서 임은 병과 마주 선다. 이 차이가 오합에 대한 공통된 이해를 흔들지는 않지만 격국(格局)의 긴장도를 서술하는 방식은 바꾸어 놓으므로, 책을 읽을 때는 저자가 어느 체계를 택했는지 유의해야 한다.
둘 다 물이지만 형태가 다릅니다. 임수는 양수로, 예로부터 큰 강과 바다에 비유되며 기세가 있고 밀고 나아가며 서로 이어 주는 성질을 취합니다. 계수는 음수(陰水)로, 예로부터 비와 이슬, 안개에 비유되며 스며들고 적시며 소리 없이 배어드는 성질을 취합니다. 전통적인 해석에서 임수는 바깥으로 향하는 흐름, 먼 길, 교제와 자주 연결되고, 계수는 내면의 성찰, 세심한 관찰, 은근히 스며드는 감화와 자주 연결됩니다. 다만 강약은 여전히 월령(月令)과 통근을 보고 판단하며, 음양으로 우열이 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제방이 필요한지는 물의 기세에 달려 있습니다. 신왕한 임수가 망망대해처럼 넘실대는데 제어하는 것이 없다면, 전통적으로는 무토로 제방을 쌓아 흩어진 기세를 물길로 이끌어야 한다고 보며, 이때 무토는 성취를 이루게 하는 신입니다. 그러나 무토는 임수에게 칠살이기도 합니다. 일주 자체에 뿌리가 없고 물마저 약한데 무거운 무토가 몸에 임하면, 극하여 누르는 것이 되어 오히려 원신(元神)을 상하게 합니다. 따라서 이 구결의 완전한 형태는 “임이 왕하면 무의 제어를 반기고, 임이 약하면 무가 무거운 것을 꺼린다”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조후로 용신을 취하는 사고방식입니다. 해·자·축월에는 물이 왕성하고 차가워 만물이 닫혀 갈무리되므로, 전통적으로는 이때 가장 급한 병이 추위이며 병화가 아니면 얼음을 녹이고 온기를 되찾을 수 없다고 보아 먼저 병화를 용신으로 취합니다. 다만 이는 그중 한 갈래일 뿐입니다. 억부를 따르는 학파는 먼저 일주의 강약을 보고, 물이 이미 왕성하다면 토로 제어하고 목으로 설기하는 것을 우선하며 화는 그다음으로 물립니다. 두 설이 함께 전해지므로, 실제로 무엇을 택할지는 원국에서 어느 쪽의 편고(偏枯)가 더 심한지를 보고 결정해야 합니다.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해는 임수의 본기 뿌리이고 자는 임수가 왕성해지는 자리여서 이 둘이 가장 직접적이지만, 신(申)의 지장간에 든 임도 여기(餘氣)의 뿌리로 칩니다. 또한 진은 물의 창고인 수고(水庫)이므로, 신자진이 삼합하여 국을 이루면 전체 수세가 커집니다. 이 밖에 경금이나 신금(辛金)이 물을 생해 주는지, 임·계 비겁(比劫)이 일주를 돕는지도 보아야 합니다. 신강·신약의 판단은 원국 전체가 어우러진 결과이며, 한두 개의 지지가 있고 없음만으로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