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름: Yin Wood · Vine Wood
을목(乙木)은 십천간의 두 번째로, 오행으로는 음목(陰木)에 해당한다.
을목은 음목으로——화초와 넝쿨, 울타리 가의 나무이다. 갑목이 곧은 줄기라면 을목은 감아 오르는 넝쿨로, 의지할 곳에 기대어 위로 자란다. 일주가 되면 온화하면서도 질기고, 사람을 대하는 데 능숙하며, 굽힐 수도 펼 수도 있는 성질을 주관한다. 을목을 일주로 하는 사람은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주변의 도움을 얻어, 고요함으로 움직임을 제어하는 경우가 많다.
을목은 병화(丙火)의 따뜻한 비춤을 기뻐하나 경금·신금(庚辛金)에 베이고 꺾이는 것을 꺼린다. "을경합화금(乙庚合化金)"은 음목과 양금의 합으로,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보완하는 것이며, 공예가나 외교관의 명식에서 자주 보인다.
『적천수(滴天髓)』가 을목을 논한 대목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것은 “등라계갑(藤蘿繫甲)”이라는 한 구절이다. 넝쿨이 큰 나무를 타고 오르면 봄이든 가을이든 의지할 데가 있다는 뜻이다. 명리에서는 이를, 을목 일간의 사주에 갑이 보이거나 지지가 인·묘에 통근해 있으면 부드러운 나무에 뼈대가 생겨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지 않는다는 의미로 읽는다. 같은 단락은 또 허하고 습한 땅이라면 오(午) 운에 이르러도 여전히 근심이 숨어 있다고 말한다. 젖은 나무는 불을 받지 못하므로, 뿌리 없이 들뜬 을은 아무리 왕성한 불을 만나도 수기(秀氣)를 드러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의지한다는 사실보다 무엇에 의지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갑 자체에 뿌리가 없다면 넝쿨이 매달린 곳도 믿을 수 없다.
을을 볼 때는 먼저 뿌리를 살핀다. 을의 녹(祿)은 묘에 있고, 통근하는 자리는 대개 묘·미·진·해이다. 천간에 갑이 따로 보이면 ‘계갑’으로 논하며, 단순히 겁재가 재를 빼앗는 것으로 보는 경우와는 구별한다. 득령 여부는 월령이 인·묘·진인지로 가린다. 앞에서 을목은 병화를 기뻐하고 금의 극을 꺼린다고 했는데, 이는 일반 원칙이고 계절에 대입하면 다음과 같다. 봄의 을은 목이 왕하므로 병화가 투출하여 수기를 드러내고 계수가 적셔 주는 것이 좋다. 여름의 을은 메마름을 꺼리므로 먼저 물을 구한다. 가을의 을은 금의 극을 받으므로 대개 정화를 취해 금을 제어한다. 겨울의 을은 차갑게 얼어 있어 병화가 아니면 봄기운을 되찾을 수 없다. 십신으로 말하면 을이 경을 보면 정관, 신(辛)을 보면 칠살이다. 똑같이 금이 목을 극하는 관계이지만 읽는 법은 달라서, 정관에는 절제의 뜻이 있고 칠살에는 압박의 상이 있다. 옛사람들은 이를 가지치기와 벌목의 차이로 구별했다.
을목을 둘러싼 가장 큰 견해 차이는 음간의 생왕을 어떻게 읽느냐에 있다. 한 갈래는 십이운성(十二運星)의 음양 순역(順逆)을 따라 을이 오에서 장생하고 해에서 사(死)한다고 본다. 다른 갈래는 음양이 함께 나고 함께 죽는다는 동생동사(同生同死)를 주장하며, 음간의 역행에 대해 대체로 유보적이다. 이 후자의 입장은 흔히 통째로 『적천수』의 이름 아래 묶이곤 하는데, 여기서는 한 겹 더 나누어 볼 필요가 있다. 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음양 순역의 법을 하나로 고집해서는 안 된다고만 말하며 기계적으로 적용하지 말라고 일깨울 뿐, 역행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동생동사를 분명하게 주장하고 음간의 역행을 체계적으로 논박한 것은 청나라 임철초(任鐵樵)가 『적천수천미(滴天髓闡微)』에 단 주석이다. 두 체계 아래에서는 같은 을이라도 강약 평가가 정반대가 될 수 있다. 양인(羊刃)의 위치도 마찬가지다. 양간의 양인은 각 학파의 견해가 일치하지만, 음간에 양인이 있는지, 있다면 어느 지지에 떨어지는지는 지금까지도 설이 엇갈린다.
을의 본래 뜻 역시 화초에 있지 않다. 한(漢)대에 천간의 이름을 풀이한 문헌은 “분알어을(奮軋於乙)”이라는 말로 그 기세를 그렸는데, 이는 초목이 처음 돋아날 때 몸을 구부린 채 흙을 떠밀며 비집고 나오는 바로 그 힘을 가리킨다. 『설문해자(說文解字)』도 을을 풀이하면서 봄날 초목이 굽은 채로 움터 나오는 모습을 취했다. 경방(京房)의 납갑(納甲)에서는 곤괘가 을을 받는데, 순음으로서 떠받쳐 싣고 두터운 덕으로 만물을 싣는 곤의 성질이 을의 굽히고 펴는 부드러운 질김과 꼭 맞아떨어진다. 두 층위를 함께 보면 을의 부드러움은 애초에 나약함이 아니라 에둘러 가는 길이었다. 여기서 몇 가지 오해도 걷어 낼 수 있다. 을목은 유약함과 같지 않으며, 더욱이 여성을 뜻하지도 않는다. 천간의 음양은 형태의 분류일 뿐 성별과는 무관하며, 명식에 음간이 많은 남성의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을경합 역시 명주가 자신을 잃는다거나 반드시 남을 따르게 된다는 뜻이 아니다. 합은 두 천간 사이의 끌어당김일 뿐이고, 금으로 화하는지 여부에는 별도의 조건이 있으며, 화하지 않을 때는 대개 서로 얽매는 관계로 논한다. 을이 일을 감당하는 힘에서 반드시 갑보다 못하리라는 생각에 대해서도 말하자면, 실제로는 질긴 성질 그 자체가 하나의 강함이다.
일주(日柱)의 천간은 명주 본인을 나타내므로, 일간이 을이면 흔히 말하는 을목 사주로서 음목에 속합니다. 전통적으로 화초와 넝쿨을 상으로 삼으며, 부드러우면서도 질기고 적응을 잘하며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는 성질을 주관한다고 봅니다. 주의할 점은 갑과 을의 차이가 음양이라는 형태의 차이일 뿐 힘의 등급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을의 실제 강약은 세 가지로만 정해집니다. 태어난 달에 목이 왕한지, 지지에 묘·미·진·해 같은 뿌리가 있는지, 주변의 생부와 극설이 어떠한지입니다. 묘월에 태어나 지지에 다시 미와 해를 본 을은, 사주 전체가 신(申)·유로 가득한 가운데 천간에 홀로 떠 있는 갑보다 훨씬 강합니다.
『적천수』에서 을목을 형용한 표현으로, 넝쿨이 큰 나무를 붙잡고 오르면 계절이 바뀌어도 두렵지 않다는 뜻입니다. 사주에 적용하면, 을목 일간의 천간에 갑이 보이거나 지지가 인·묘에 통근해 있을 때 부드러운 나무가 의지할 곳과 뼈대를 얻어 기댈 데 없이 떠돌지 않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전통적인 해석의 초점은 ‘의존’이라는 말에 있지 않고, 의지하는 대상이 믿을 만한가에 있습니다. 갑 자체에 뿌리가 없다면 넝쿨이 매달린 곳도 믿을 수 없습니다.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을이 경을 보면 십신으로는 정관이고, 금이 목을 극하는 데에는 본래 단속의 뜻이 있습니다. 동시에 을과 경은 서로 합하므로 제약과 끌어당김이 함께 생깁니다. 전통적인 해석에서는 두 가지를 봅니다. 하나는 목의 근기가 이 제약을 감당할 만큼 충분한지이고, 다른 하나는 사주에 금을 제어할 화가 있는지, 또는 금과 목 사이를 통관해 줄 수(水)가 있는지입니다. 신강하면서 제어하는 것이 있으면 대개 쓸 만하다고 보고, 신약한데 구해 줄 것이 없을 때에야 그 해로움을 논합니다.
겨울 달은 수가 왕하고 목이 차가워, 전통적으로 젖은 나무는 수기(秀氣)를 드러내기 어렵다고 봅니다. 이런 사주를 읽을 때는 보통 조후용신부터 찾습니다. 병화가 투출하여 언 것을 녹이고 따뜻함을 되돌리는지, 지지에 의지할 목의 뿌리가 있는지, 수가 지나치게 왕해 물이 넘치고 나무가 떠 버리는 상황은 아닌지를 살핍니다. 병화를 쓸 수 있고 수가 범람하지 않는다면 겨울의 을이라도 마찬가지로 해 볼 만하다고 논할 수 있습니다. 사주 전체가 차갑고 습한데 화마저 없을 때에야 막히고 정체된 상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