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坤為地(곤위지)

繁: 坤為地简: 坤为地Kūn Wéi Dì· 주역(역경)

다른 이름: 重坤 · Hexagram 2 · ䷁ · The Receptive Hexagram

곤위지(坤為地)는 주역 64괘의 제2괘로, 곤괘(☷)를 위아래로 겹친 팔순괘 가운데 하나다.

『주역』 두 번째 괘. 여섯 효 모두 음효이며, 곤(땅)이 위아래로 거듭되어 순종·받아들임·두터운 덕의 힘을 상징한다.

곤위지(坤爲地)는 육십사괘의 두 번째 괘로, 곤괘(☷)가 위아래로 거듭되어 이루어진다. 여섯 효가 모두 음효이니 『주역』 전체에서 가장 순수한 음의 괘이며, 건괘와 서로 짝을 이룬다. 괘사는 "이빈마지정(利牝馬之貞)" — 암말처럼 부드러움 속에 굳셈을 지니고 바름을 지켜 멀리 이르는 것이 이롭다는 뜻이다.

「대상전」은 "지세곤, 군자이후덕재물(地勢坤, 君子以厚德載物)" — "땅의 형세는 곤이니, 군자는 이로써 덕을 두텁게 하여 만물을 싣는다"고 풀이한다. 이 괘를 얻으면 스스로 나서기보다 받아들이고, 정성스럽게 준비하며, 고요함으로 움직임을 다스리고, 부드러움의 덕으로 만물을 실어야 함을 뜻한다.

건이 만물을 시작하게 하는 것으로 일컬어진다면, 곤은 만물을 낳는 것으로 일컬어진다. 『단전(彖傳)』은 “지극하도다, 곤원이여! 만물이 이에 힘입어 생겨난다”고 하면서, 곤이 만물을 낳을 수 있는 까닭은 하늘을 순히 받들고 그와 다투지 않는 데 있다고 짚는다. 『설괘전(說卦傳)』이 곤에 배당한 상(象)의 목록은 거의 모두 무언가를 싣고 받치는 것들이다. 땅, 어머니, 베, 솥, 새끼 딸린 어미소, 큰 수레, 무리가 그것이다. 곤괘에 붙은 『문언전』의 한 대목은 자주 인용되는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곧 선을 쌓는 집안에는 반드시 넘치는 경사가 있다는 말의 출처이기도 하다.

곤의 유순함은 나약함과 같지 않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초육(初六) 한 효부터가 경계를 일깨우는 가르침이다. 서리를 보면 마땅히 단단한 얼음이 올 것을 미루어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곤을 소극적이거나 불길한 괘로 읽는다면 괘사가 취한 암말의 상을 건너뛰는 셈인데, 전통이 이 상을 택한 까닭은 바로 길들여진 순함과 멀리 가는 다리 힘이 본래 한 가지 일의 양면이기 때문이다. 또한 곤은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괘도 아니다. 어머니는 싣고 받치는 성질을 나타내는 여러 상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같은 목록에는 베와 솥, 큰 수레도 함께 올라 있다.

여섯 효가 모두 음이기에 곤은 건과 정확히 대응하는 괘가 된다. 모든 효가 변하면 건이 나타나고, 괘 전체를 뒤집어도 모양이 바뀌지 않으며, 호체(互體)를 취해도 다시 곤이 나온다. 효사는 미미한 데서 뚜렷한 데로 나아가는 하나의 흐름을 그린다. 초육은 서리를 밟고 단단한 얼음이 닥칠 것을 알고, 육사는 주머니 끈을 묶으니 허물도 없고 칭찬도 없으며, 육오는 누런 치마이니 크게 길하고, 상육에 이르면 용이 들판에서 싸우니 음이 이미 가득 차서 마침내 양과 다투게 된 것이다. 『주역』 전체에서 여섯 효가 모두 변할 때 쓰는 말을 따로 갖춘 괘는 곤과 건 둘뿐이다.

“서남득붕, 동북상붕(西南得朋, 東北喪朋)”, 곧 서남쪽에서는 벗을 얻고 동북쪽에서는 벗을 잃는다는 구절은 수백 년 동안 적어도 두 가지로 읽혀 왔다. 한 갈래는 후천팔괘(後天八卦)의 방위로 풀이한다. 서남은 곤괘 자신의 자리이고 동북은 간괘에 속하므로, 한쪽에서는 같은 무리끼리 만나고 다른 쪽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다른 갈래는 ‘벗을 잃음’을 오히려 좋은 일로 읽는다. 같은 무리를 떠나야 비로소 양과 짝을 이룰 자리가 생기며, 이것이 바로 괘사가 뒤이어 긍정하는 바라는 것이다. “먼저는 헤매다가 나중에 주인을 얻으니 이롭다(先迷後得主, 利)”는 구절을 어디서 끊어 읽을지에 대해서도 주석가마다 취사가 다르며, 대다수는 이곳에 중의성이 있음을 있는 그대로 밝힐 뿐 억지로 하나의 해석을 정하지 않는다.

실제 점에서 곤은 대개 행동보다 자리를 말하는 괘로 읽힌다. 보좌하는 일, 쌓아 가는 일, 이미 정해진 흐름을 따라가는 일, 남이 이미 열어 놓은 판에 참여하는 일, 그리고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가치가 드러나는 일에는 알맞고, 앞을 다투거나 결단을 서둘러 몰아붙이거나 무슨 일에서든 맨 앞에 서려 하는 데에는 알맞지 않다. 육효점에서 팔순괘는 세효(世爻)가 맨 위에 있고 응하는 효가 없어서, 대개 바깥의 도움이 제한적이라고 판단한다. 초효가 동하면 이미 조짐은 보였으나 아직 손대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물어볼 수 있고, 상효가 동하면 유순함도 끝까지 밀어붙이면 더 이상 유순함이 아니게 된다는 점을 일깨운다. 곤은 몇 가지 대조 관계 속에도 놓여 있다. 건과는 착괘(錯卦) 한 쌍을 이루는데, 고전에서 『주역』을 논할 때는 흔히 이 두 괘를 책 전체가 드나드는 문으로 본다. 간위산과는 같은 토에 속하면서도 무게중심이 달라서, 간은 멈춰야 할 때 멈추는 것을 말하고 곤은 무거운 짐을 지고도 마다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아울러 세 획의 곤괘(☷)와 여섯 획의 곤위지는 한데 섞어 말해서는 안 된다. 앞의 것은 구성 요소가 지니는 성질이고, 뒤의 것은 하나의 완결된 국면이다.

자주 묻는 질문

곤위지는 나쁜 괘인가요?

곤위지는 나쁜 괘가 아닙니다. 전통적으로 곤은 건과 함께 『주역』 전체의 두 근본 괘로 나란히 꼽히며, 건보다 아래가 아니라 대등한 지위에 있습니다. 곤이 가리키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하나의 방식입니다. 앞장서기보다 보좌하고, 일을 벌이기보다 준비하며, 거두어들이기보다 쌓아 가는 편이 알맞다는 것입니다. 기반을 다지는 일, 버금 자리에서 돕는 일, 시간이 쌓여야 가치가 생기는 일을 물을 때는 대체로 이롭게 보고, 속도를 겨루거나 앞자리를 다투는 일을 물을 때는 대체로 불리하게 봅니다.

“후덕재물(厚德載物)”은 어디에서 나온 말인가요?

후덕재물은 곤괘의 『대상전』에서 나온 말이며, 이와 짝을 이루는 “자강불식(自強不息)”은 건괘의 『대상전』에 나옵니다. 두 구절은 중국어로 수양을 논하는 글에서 거의 언제나 함께 인용되는데, 하나는 스스로 서는 것을, 다른 하나는 너그럽게 품는 것을 말합니다. 칭화대학은 이 두 말을 합쳐 교훈으로 삼았고, 그래서 이 여덟 글자는 점복의 범위를 훨씬 넘어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이상견빙지(履霜堅冰至)”는 무슨 뜻인가요?

“서리를 밟으면 단단한 얼음이 이른다”는 이 구절은 곤괘 초육의 효사로, 추위가 아니라 미루어 아는 법을 말합니다. 발밑의 서리는 놓치기 쉬운 작은 징조이고, 단단한 얼음은 그 뒤에 닥쳐오는 큰 국면입니다. 이 효는 예로부터 “작은 것을 보고 큰 것을 알아 일찍 주의를 기울이라”는 경계로 읽혀 왔고, 특히 조금씩 쌓여 이루어지는 일에 잘 들어맞으며, 『주역』 전체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이미지 가운데 하나입니다.

건위천과 곤위지는 어떻게 함께 보아야 하나요?

전통에서는 건위천과 곤위지를 서로 무관한 두 괘가 아니라 한 쌍으로 봅니다. 하나는 순양, 하나는 순음이어서 모든 효가 서로 반대이고, 둘 다 뒤집어도 모양이 바뀌지 않습니다. 고전의 표현으로는 건은 만물이 비롯되는 바탕(資始)을, 곤은 만물이 생겨나는 바탕(資生)을 주관하니, 하나는 발단에, 다른 하나는 형체를 이루는 데에 있습니다. 실제로 일을 볼 때에는 이 한 쌍을 놓고 지금이 새로 열고 일으켜야 할 때인지, 이어받아 다져야 할 때인지를 묻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남득붕, 동북상붕”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서남득붕, 동북상붕(西南得朋, 東北喪朋)”, 곧 서남쪽에서는 벗을 얻고 동북쪽에서는 벗을 잃는다는 말은 곤괘의 괘사에 나오는 구절로, 예로부터 정설이 없습니다. 한 설은 방위로 풀이합니다. 후천팔괘에서 서남은 곤괘의 자리이므로 서남쪽으로 가면 같은 무리의 도움을 얻고, 동북은 간괘에 속하니 같은 무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른 설은 ‘벗을 잃음’을 이로운 일로 보아, 같은 무리를 버려야 비로소 양과 짝을 이룰 수 있다고 풀이합니다. 대다수 주석가는 이곳에 중의성이 있음을 있는 그대로 밝힐 뿐 억지로 하나의 해석을 정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