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艮為山(간위산)

繁: 艮為山简: 艮为山Gèn Wéi Shān· 주역(역경)

다른 이름: 重艮 · Hexagram 52 · ䷳

간위산(艮為山)은 주역 64괘의 제52괘로, 간괘(☶)를 위아래로 겹친 팔순괘 가운데 하나다.

제52괘. 간(산)이 위아래로 거듭되어 멈춤, 멈출 때를 아는 것, 생각이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음을 상징한다.

간위산(艮爲山)은 육십사괘의 제52괘로, 간괘(☶)가 위아래로 거듭되어 이루어진다. 간은 멈춤을 뜻한다. 괘사는 "간기배, 불획기신(艮其背, 不獲其身)" — 등을 멈추어 들뜬 마음을 들여다보이지 않게 한다는 것으로, 마땅히 멈출 자리에 멈추고 조급한 마음을 가라앉히는 법을 일깨운다.

「대상전」은 "겸산, 간. 군자이사불출기위(兼山, 艮; 君子以思不出其位)" — "산이 거듭 나란한 것이 간이니, 군자는 이로써 생각이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풀이한다. 이 괘를 얻으면 멈추고, 지키고, 제자리에 편안히 머무는 것이 마땅하며, 억지로 나아가려 하지 말고 멈출 때를 안 뒤에야 비로소 안정을 얻는다고 본다.

간괘를 읽는 방식 전체를 꿰뚫는 것은 『단전(彖傳)』의 한 구절이다. “때가 멈출 때이면 멈추고 때가 갈 때이면 가서, 움직임과 고요함이 그 때를 잃지 않으니 그 도가 밝게 빛난다.” 이 구절이 있기에 간은 더 이상 하나의 정해진 결론이 아니라 때를 묻는 문제가 된다. 정작 무게를 싣는 쪽은 뒷부분이다. ‘때가 갈 때이면 간다’고 말한 이상 움직임도 멈춤과 똑같이 간에 속하므로, 이 괘를 일률적인 금지령 한 장으로 읽을 수는 없다.

역전(易傳)의 글들은 간을 한 해 순환의 지도리로 자리매김할 뿐 막다른 길로 보지 않는다. 『설괘전(說卦傳)』은 간을 멈춤으로 풀이하고 동북에 배정하며, 이 방위를 만물이 끝맺음을 이루고 또 시작을 이루는 곳이라 한다. 끝과 시작이 한 구절 안에 함께 놓여 있는 것이다. 또 간은 세 번째로 구하여 얻은 아들이므로 소남(少男), 곧 막내아들이 되며, 동물로는 개를, 사람 몸으로는 손을 취한다고 한다. 산 외에도 좁은 길, 작은 돌, 대문과 궐문 같은 상을 따로 늘어놓는다. 『서괘전(序卦傳)』은 간을 진 뒤에 이어 붙이면서 단 한 마디만 한다. 사물은 끝내 움직이기만 할 수 없으므로 이를 멈추게 한다는 것이다.

간괘 여섯 효의 효사는 효마다 사람의 몸에서 상을 취하여 아래에서 위로 살아 있는 사다리 하나를 이룬다. 발가락, 장딴지, 허리(限), 몸통, 볼(輔)을 거쳐 상구(上九)의 돈간(敦艮), 곧 도탑게 멈춤에 이른다. 이 단계적 상승은 하나의 방법으로 읽을 만하다. 발가락에서 멈추는 것은 아직 길을 나서기 전에 멈추는 것이므로 허물이 없다. 허리에서 멈추는 것은 온몸을 떠받치는 허리와 등뼈 자리에서 억지로 끊어 내는 일이어서, 효사는 이를 등줄기 살이 찢기고 위태로움이 마음을 태운다고 그린다. 너무 늦게, 또 너무 거칠게 멈춘 모습 그대로다. 볼에서 멈추면 말에 질서가 생긴다. 오직 상구 한 효만은 고요함이 억눌린 것이 아니라 무르익은 것이어서, 괘 안에서 곧바로 길하다고 단정된다.

괘사 첫 구절의 풀이는 예로부터 하나로 정해지지 않았으며, 두 가지 풀이 가운데 무엇을 취하느냐에 따라 이 괘는 서로 다른 영역에 놓인다. 한 갈래는 ‘배(背)’를 본래 뜻 그대로 취한다. 등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이므로 등에 멈추면 들뜬 몸이 지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한 갈래는 이를 등지다, 서로 등을 돌리다의 뜻으로 읽는데, 그러면 뒤에 나오는 “그 뜰을 거닐어도 그 사람을 보지 못한다(行其庭, 不見其人)”와 꼭 맞아떨어져 두 당사자가 서로 등을 돌린 상이 된다. ‘간기배’에 이어지는 ‘불획기신’의 ‘신(身)’ 자 역시 두 가지로 읽힌다. 육신으로 보기도 하고 자아로 보기도 하는데, 한 읽기는 수양 쪽으로, 다른 읽기는 인간사 쪽으로 기운다. 두 설 모두 연원이 있고 저마다 하나의 완결된 괘로 풀어낼 수 있다. 두 설 어느 쪽도 뒷받침하지 않는 것은 간괘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로 단순화하는 읽기다. 동북이라는 자리는 이 괘를 하나의 문턱으로 만들고, 『대상전』의 “생각이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도 자기 직분과 분수를 넘지 않는다는 뜻이지 생각을 멈추거나 향상을 포기하라고 권하는 말이 아니다.

납갑(納甲) 육효 계통에서 팔순괘(八純卦)는 세효(世爻)가 맨 위 효에, 응효(應爻)가 셋째 효에 놓인다. 그래서 점치는 이 자신은 괘 전체에서 가장 높고 가장 고요한 자리에 있고, 묻는 일은 사람 몸 사다리의 한가운데에 놓인다. 실제로 판단할 때 간을 읽으려면 먼저 두 가지 ‘멈춤’을 가려야 한다. 하나는 밖에서 오는 가로막힘이고, 다른 하나는 점치는 이 스스로가 만들어 내고 있는 정체다. 위아래가 같은 괘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간은 대개 뒤의 것에 속한다. 일은 이미 무너졌다기보다 제자리에 붙들려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으며, 늦어지거나 막히거나 아직 바뀌지 않은 어떤 조건을 기다리는 상태로 본다.

자주 묻는 질문

간위산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인가요?

일률적으로 그렇지는 않습니다. 『단전』은 멈춤과 나아감을 나란히 들며 움직임과 고요함이 그 때를 잃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므로, 간위산이 다루는 것은 금지가 아니라 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 점에서는 대개 지금은 밀고 나갈 때가 아니므로 현재의 자리를 지키며 조건이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것이 좋고, 진짜 위험은 멈추는 데가 아니라 이 시점에 억지로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다고 풀이합니다.

괘사의 “간기배, 불획기신”은 어떻게 풀이하나요?

제52괘 괘사의 첫 구절입니다. 전통적으로는 ‘배(背)’, 곧 등을 자기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보는 경우가 많으며, 등에 멈춘다는 것은 욕망이 마주할 대상이 없는 자리에 멈춘다는 뜻입니다. 이어지는 구절은 그 결과 들뜬 몸이 느껴지지 않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 원리는 들뜸을 일으키는 대상 자체를 빼내는 데 있지 억지로 누르는 데 있지 않으므로, 전통에서는 이를 단지 하나의 이상이 아니라 실제로 닦는 공부(工夫)로 여겨 왔습니다. 한편 ‘배’를 등지다, 서로 등을 돌리다의 뜻으로 읽는 옛 설도 있는데, 이 경우 이 구절이 그리는 것은 내면의 공부가 아니라 두 사람이 서로 등을 돌린 모습입니다.

간위산과 진위뢰는 어떤 관계인가요?

두 괘는 같은 도형의 양 끝입니다. 진위뢰를 괘 전체째로 뒤집으면 바로 간위산이 되며, 그래서 두 괘는 제51괘와 제52괘로 나란히 놓입니다. 『잡괘전(雜卦傳)』은 네 글자로 둘을 맞세워 “진은 일어남이요, 간은 멈춤이다(震起也, 艮止也)”라고 합니다. 가족의 상으로는 진이 장남, 간이 소남이고, 오행으로는 진이 동방의 목(木), 간이 동북의 토(土)입니다. 전통적으로 두 괘를 함께 참조하는 일이 많은데, ‘움직임’과 ‘움직임의 절도’가 본래 같은 하나의 주제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점에서 간위산이 나오면 일이 가망이 없다는 뜻인가요?

전통적인 읽기는 ‘끝났다’가 아니라 ‘붙들려 있다’입니다. 효사가 가장 분명한 길잡이입니다. 일찍 멈추면 허물이 없고, 늦게 억지로 멈추면 위태로움이 있으며, 상구처럼 고요함이 무르익은 경우라야 비로소 길하다고 합니다. 즉 이 괘가 가르는 것은 어떻게 멈추었느냐이지, 일이 아직 움직일 수 있느냐가 아닙니다. 흔히 주는 조언도 자리를 지키며 기다리라는 것이지, 여기서 손을 놓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간위산은 왜 동북에 배정되나요?

『설괘전』은 간을 동북에 두고, 이 자리를 만물이 끝을 이루고 시작을 이루는 곳, 곧 겨울과 봄이 맞닿는 때로 풀이합니다. 지지로는 대략 축(丑)과 인(寅) 사이에 해당합니다. 이 방위는 단순히 장부에 적어 넣듯 배정한 것이 아니라 괘의 뜻을 떠받치고 있습니다. 동북이 끝과 시작을 함께 품고 있기 때문에 간은 종착점으로 읽히지 않는 것입니다. 간은 오행으로 토에 속하고, 가족의 상으로는 소남입니다. 실제 점에서는 흔히 동북을 응하는 방위로, 겨울과 봄이 바뀌는 시기를 응하는 시기로 보지만, 이 구간을 구체적인 절기나 날짜에 어떻게 대응시키는지는 학파마다 일치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