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름: 重兌 · Hexagram 58 · ䷹
태위택(兌為澤)은 주역 64괘의 제58괘로, 태괘(☱)를 위아래로 겹친 팔순괘 가운데 하나다.
태위택(兌爲澤)은 육십사괘의 제58괘로, 태괘(☱)가 위아래로 거듭되어 이루어진다. 태는 기쁨과 열린 표현을 뜻한다. 괘사는 "형, 리정(亨, 利貞)" — 통하되 바름을 지켜야 이롭다는 것이니, 기쁨은 바른 도에 뿌리를 두어야 하며 지나친 방종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대상전」은 "이택, 태. 군자이붕우강습(麗澤, 兌; 君子以朋友講習)" — "두 못이 나란히 이어진 것이 태이니, 군자는 이로써 벗과 더불어 강론하고 익힌다"고 풀이한다. 이 괘를 점에서 얻으면 기쁨, 말로 서로를 통하게 함, 더불어 배우고 나누는 교류를 뜻하지만, 참된 기쁨은 진실한 믿음에 바탕을 두어야 하며 단지 입으로만 즐거운 것이 아님을 일깨운다.
역전(易傳)의 글들은 태에 이중의 뜻풀이를 남겼고, 후대에 상을 취하는 방식은 모두 여기에서 갈라져 나왔다. 『설괘전(說卦傳)』에서 태를 풀이하는 그 글자는 기쁨과 말이라는 두 가지 뜻을 함께 품고 있다. 『설괘전』은 태의 상을 못으로 취해 정서쪽에 배속하고, 또 태를 한가을, 곧 만물이 기뻐하는 때로 본다. 또 태는 세 번째로 구하여 딸을 얻은 것이므로 막내딸이 되며, 동물로는 양을, 사람의 몸으로는 입을 취한다고 한다. 『서괘전(序卦傳)』은 태를 손괘 뒤에 이어 놓고 들어간 뒤에야 기뻐한다고 하였으며, 『잡괘전(雜卦傳)』은 ‘태는 드러나고 손은 숨는다’는 두 마디로 둘을 맞세웠다.
『단전(彖傳)』이 내놓는 것은 괘체(卦體)의 층위에서 읽는 방법이다. 굳셈은 가운데에, 부드러움은 바깥에 있으니(剛中而柔外) 기뻐하되 바름을 지켜야 이롭다는 것이다. 태의 경괘(經卦)는 두 양효가 아래에, 한 음효가 위에 놓인 모양이어서, 겉으로 드러난 부드러움 밑을 받치고 있는 것은 굳셈이다. 바로 이 순서가 관건이다. 『단전』은 기쁨으로 백성을 앞서 이끌면 백성이 그 수고로움을 잊고, 기쁨으로 어려움에 맞서면 백성이 죽음마저 잊는다고 말한다. 기쁨에 가운데의 굳셈이라는 뼈대가 있어야 비로소 여기에 이를 수 있으며, 바깥의 부드러움 한 겹만 남는다면 아첨으로 흐를 뿐이다. 『대상전』이 취한 쓰임새 역시 바로 기쁨을 이 구조 위에 앉힌 것이다.
태괘가 치우치게 읽힐 때는 대개 서로 반대되는 두 방향으로 기운다. 한쪽으로 읽으면 이 괘는 ‘반드시 순조롭고 즐겁다’는 뜻이 되는데, 괘사는 그런 뜻을 감당하지 못한다. 형통하다는 말 바로 뒤에 ‘바름을 지켜야 이롭다’는 말이 붙어 이미 바름을 조건으로 걸어 두었고, 기쁨을 구하는 육삼(六三)은 아예 흉하다고 단정하기 때문이다. 다른 쪽으로 읽으면, 태가 입에 해당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괘가 구설과 시비라는 한 가지 일로 쪼그라든다. 이 역시 치우친 읽기다. 『대상전』이 취한 말의 쓰임은 바로 벗과 더불어 강론하고 익히는 것, 곧 말로 서로를 갈고닦는 일이기 때문이다. 두 읽기가 빠뜨린 것은 같은 한 걸음, 곧 기쁨이 어디에서 오는가 하는 물음이다. 그리고 여섯 효가 가르는 것이 바로 이 한 걸음이다.
태괘의 여섯 효는 ‘기쁨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유난히 분명하게 가르며, 그 경계는 바로 음양에서 갈린다. 양효는 모두 좋다. 초구는 화합하여 기뻐하니 길하고, 구이는 믿음으로 기뻐하니 길하다. 문제는 두 음효에 있다. 육삼의 ‘내태(來兌)’, 곧 밖으로 나가 기쁨을 구하는 것은 곧바로 흉하다고 단정되고, 상육의 ‘인태(引兌)’에는 아예 길흉을 말하는 글이 붙어 있지 않다. 구사는 무엇을 기뻐할지 저울질하느라 편안하지 못하다가 병통이 되는 것을 끊어 낸 뒤에야 기쁨이 있고, 구오는 양을 갉아먹어 허무는 자를 믿는 것을 경계한다. 이를 아울러 보면, 정성에서 우러난 기쁨은 편안하고 밖을 향해 구해 온 기쁨은 위태롭다.
실제 판단으로 옮겨 오면, 태는 입의 상을 취하므로 주관하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한 무리를 이룬다. 말하기, 협상, 가르침, 계약, 증언, 설득, 먹고 마시며 즐기는 일이 그것이며, 넓혀 보면 말다툼에까지 미친다. 태의 착괘(錯卦)는 간위산으로, 드러냄과 멈춤이 서로 맞선다. 종괘(綜卦)는 손위풍이다. 태와 간의 관계는 대립에 그치지 않는다. 못이 위에 있고 산이 아래에 있으면 제31괘가 되고, 산이 위에 있고 못이 아래에 있으면 제41괘가 되니, 두 경괘가 서로 겹치면서 감응과 손익이라는 두 가지 고전적 주제가 또 생겨난다. 일이 응하는 시기를 묻는 경우에는 대개 서쪽, 가을, 또는 유(酉)에 해당하는 달을 취한다. 이 밖에 오늘날까지 정설이 없는 옛 해석이 두 군데 있다. 하나는 훈고(訓詁)의 문제다. 태가 근거로 삼는 글자는 기쁨과 말하기라는 두 가지 독법을 겸하며, 선진(先秦) 시대의 용례에서는 두 뜻이 모두 통한다. 역대 주석가들은 대개 둘을 함께 두고 어느 한쪽을 버리지 않았으며, 그 때문에 태괘에서는 경사스러운 상의 계열과 말에 관한 상의 계열이 동시에 생겨났다. 다른 하나는 판단의 사례에 관한 문제다. 상육은 ‘인태’라고만 말하고 길흉을 달지 않았는데, 육십사괘 가운데 판단이 없는 효는 본래 드물다. 그래서 옛 설은 이를 육삼의 흉을 이어받은 것으로 보기도 하고, 이끌기만 하고 아직 드러나지 않았으니 여전히 돌이킬 여지가 있다고 보기도 하며, 두 설이 지금까지 나란히 전한다.
그렇지 않습니다. 태위택의 괘사는 형통함을 말하지만 바로 뒤에 ‘바름을 지켜야 이롭다(利貞)’는 말을 이어 붙여 바름을 조건으로 걸어 두었고, 전통적으로 이 단서를 매우 중시합니다. 이 괘가 묻는 것은 기쁨이 어디에서 오는가입니다. 정성과 믿음으로 기뻐하는 경우는 길하다고 판단하지만, 육삼의 ‘내태(來兌)’처럼 밖으로 나가 기쁨을 구하는 경우는 곧바로 흉하다고 판단합니다. 그러므로 한 괘가 길하게 판단되는지는 점치는 사람 자신이 어떻게 행하느냐에 달려 있으며, 괘 이름이 듣기 좋다고 해서 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태위택의 『대상전』은 두 못이 서로 이어진 모습을 상으로 삼아, 벗과 더불어 강론하고 익히는 쓰임을 이끌어 냅니다. ‘이(麗)’ 자는 전통적으로 ‘붙다’, 곧 서로 붙어 이어진다는 뜻으로 풀이되므로, 이 상은 두 물이 맞닿아 서로를 불려 주는 모습이지 각자 따로 떨어져 있는 모습이 아닙니다. 주석가들은 대개 서로 보완한다는 뜻을 취합니다. 학문은 물과 같아서 홀로 있으면 고이기 쉽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주고받아야 비로소 고인 채 죽어 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관련은 있지만, 그것은 상을 취한 데서 오는 관계이지 괘의 성격을 규정한 것은 아닙니다. 『설괘전』은 사람의 몸에서 태를 입에 배속하므로, 점치는 사람들은 흔히 이 괘를 말하기, 협상, 가르침, 계약으로 넓혀 읽고, 나아가 말다툼에까지 미치게 합니다. 그러나 『대상전』이 취한 말의 쓰임은 벗과 더불어 강론하고 익히는 것으로, 긍정적인 쪽에 속합니다. 그것이 강론과 배움이 될지 시비가 될지는 전통적으로 효의 상과 묻는 일을 보고 판단하며, 괘 이름만으로 미리 정하지 않습니다.
전통적으로는 말과 선의로 풀어 가는 일에 이롭다고 봅니다. 의논, 강학과 공부, 협상, 화해, 그리고 힘으로 밀어붙이기보다 주고받음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묻는 일이 오래 묶여 있어야 하는 관계라면, 팔순괘(八純卦)가 육충(六沖)에 속한다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이 괘에서 길함을 얻었다면 대개 한 번의 대화가 잘 풀린다는 뜻이지, 한 장의 약정이 오래 지켜진다는 뜻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