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름: Earth Trigram · ☷ · 地
곤괘(坤卦)는 주역 팔괘 가운데 하나로, 위아래로 겹치면 제2괘 곤위지(坤為地)가 된다.
곤괘(坤卦)는 세 개의 음효(☷)로 이루어진다. 『설괘전』은 곤을 땅으로, 어머니로, 배(腹)로, 소로, 베로 삼는다 — 순순히 따르는 것, 받쳐 드는 것, 다투지 않고 만물을 길러내는 것을 상징한다.
점에서 곤을 보면 스스로 나서기보다 받아들이는 것, 남의 뜻을 뒷받침하는 것, 정성스러운 준비와 인내를 뜻한다. 이를 거듭 쌓으면 두 번째 괘인 "중곤(重坤)"이 되니 — "땅의 형세는 곤이다, 군자는 이로써 덕을 두텁게 하여 만물을 싣는다"는 뜻으로, 건괘와 완벽히 짝을 이룬다.
곤을 ‘유순함’으로만 기억해 두면 『설괘전』이 곤의 광상(廣象)으로 길게 늘어놓은 목록의 태반을 놓치게 된다. 곤은 땅이 되고, 어머니가 되고, 베가 되고, 가마솥이 되고, 인색함이 되고, 고름(均)이 되고, 새끼 딸린 어미 소가 되고, 큰 수레가 되고, 무늬가 되고, 무리가 되고, 자루가 되며, 끝에는 “땅에 있어서는 검은색이 된다”는 구절까지 덧붙는다. 이 취상(取象)들을 하나로 꿰는 것은 부드러움이 아니라 용량이다. 모두 담을 수 있고, 실을 수 있고,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것들이다. 『계사전(繫辭傳)』은 여기에 또 한 층을 세워 일의 시작은 건에, 사물을 이루어 내는 일은 곤에 돌린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완성이지, 단지 물러서서 양보하는 것만이 아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곤을 수동적이고 나약하며 주견 없는 것으로 읽으면 그토록 철저하게 빗나간다. 곤은 본래 소인데도 괘사는 굳이 “암말의 곧음이 이롭다(利牝馬之貞)”를 택했고, 『단전(彖傳)』은 이를 “암말은 땅의 무리이니 땅을 다님에 끝이 없다”고 풀이한다. 순하기는 순하되, 대지를 두루 다니며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오독은 건과 곤을 곧장 성별이나 지위의 높낮이에 대응시키는 것이다. 『설괘전』이 제시하는 것은 부모와 여섯 자녀라는 생성의 구조이며, 그것이 표시하는 것은 차례이지 위아래가 아니다.
곤의 여섯 효사도 줄곧 부드러운 쪽으로만 내려가지 않는다. 초육(初六)은 “서리를 밟으면 단단한 얼음이 이른다”, 육이는 “곧고 반듯하고 크다”, 육삼은 “빛나는 것을 머금으니 곧게 지킬 만하다”, 육사는 “주머니를 동여매니 허물도 없고 칭찬도 없다”, 육오는 “누런 치마이니 크게 길하다”이고, 상육에 이르면 “용이 들판에서 싸우니 그 피가 검고 누르다”가 된다. 이 흐름이 말하는 것은 조짐을 일찍 알아차리는 일, 그리고 자기 몫이 어디까지인지 아는 일이다. 음이 극에 이르도록 성하면 양과 다투게 되어, 더는 떠받쳐 싣는 것이 아니게 된다.
곤과 건은 여섯 효가 모두 반대여서 『주역(周易)』 전체에서 유일한 순음·순양의 한 쌍을 이루며, 괘의 차례에서도 바로 붙어 있다. 이 밖에도 곤의 몸에서 곧바로 자라난 괘가 둘 있다. 양효를 맨 위 효 자리에 놓으면 간괘(산)가 되고 가운데 효 자리에 놓으면 감괘(물)가 되는데, 여섯 자녀설에서는 각각 막내아들과 둘째 아들에 해당한다. 구조로 보면 간의 그침과 감의 험난함은 모두 이 평평한 땅 위에 단단한 것이 하나 더 생긴 모습으로, 하나는 길목을 가로막고 하나는 길 한가운데에 빠져 있다.
괘사의 ‘이서남득붕, 동북상붕(利西南得朋, 東北喪朋)’, 곧 서남쪽에서 벗을 얻고 동북쪽에서 벗을 잃는다는 구절은 예로부터 논란이 분분했다. 한 갈래는 후천팔괘의 방위를 따라 푼다. 곤이 서남쪽에 자리하니 같은 무리가 모여 벗을 얻고, 동북쪽은 간이라 다른 무리이므로 벗을 잃는다는 것이다. 다른 한 갈래는 『단전』의 “동북쪽에서 벗을 잃으나 마침내 경사가 있다”에서 출발해 벗을 잃는 것을 좋은 일로 읽는다. 같은 무리를 떠나야 비로소 일을 이룬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설은 방향이 정반대이지만 모두 전해 내려오는 문헌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실제 점에서는 대개 묻는 일이 동업인지 홀로 나아가는 일인지에 따라 가린다.
실제 점에서 ‘받아들이되 먼저 나서지 않는다’는 것은 출발점일 뿐이고, 이어서 물어야 할 것은 자신이 어디까지 떠맡을 생각인가이다. 괘사는 첫머리에 ‘원형(元亨)’을 두어 그 자체로는 형통하지만, 조건을 붙인다. “먼저 하면 헤매고 뒤에 하면 주인을 얻는다”는 것이다. 스스로 앞장서면 길을 잃기 쉽고, 이미 형태를 갖춘 방향을 따르면 오히려 기댈 곳이 생긴다. 그러므로 곤은 이룬 것을 지키는 일, 쌓아 가는 일, 바탕을 다지는 일, 남의 일을 뒷바라지하는 일에 알맞고, 홀로 앞을 다투는 일에는 맞지 않는다. 협력이나 수성을 묻는다면 대체로 나쁘지 않고, 독창적인 일이나 시간을 다투는 일을 묻는다면 불리한 쪽으로 기운다. 납갑(納甲) 육효에서 곤궁(坤宮)은 토에 속하므로, 응기(應期)를 물으면 대개 앞당기지 않고 뒤로 미루어 잡는다.
『설괘전』은 팔괘를 가족에 빗댄 비유에서 곤을 어머니로 두고, 취상에도 배(腹)와 소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비유는 팔괘 사이의 생성 순서를 표시하기 위한 것이지, 현실에서 누가 여성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괘를 풀 때 곤은 받아 잇는 쪽, 조건을 마련해 주는 쪽으로 읽히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것은 사람일 수도 있고 자원이나 토지, 팀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 그저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이는 곤괘 초육의 효사로, 글자 그대로는 서리를 밟았으면 얼음이 어는 날이 멀지 않았음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순음인 곤에 되돌려 놓고 보면 더 분명해집니다. 곤에는 양효가 하나도 없어 변화가 가장 미세한 곳에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으므로, 그 첫 효가 말하는 것은 아직 일이 아니라 조짐입니다. 고전적인 독법은 이 구절을 조짐을 논한 본보기로 삼아 왔습니다. 일은 가장 미미한 단계에서 이미 방향을 드러내며, 모양을 갖춘 뒤에 대응하면 늦다는 것입니다. 점에서 이 효를 얻으면 전통적으로는 대개 눈앞의 국면만 바라보기보다 초기의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징후로 주의를 되돌리게 합니다.
어느 도식을 쓰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후천팔괘(문왕 괘위)에서 곤은 서남쪽에 있으며 이십사산에서는 미(未)와 신(申) 사이에 배치되는데, 풍수와 택일에서는 주로 이 체계를 씁니다. 선천팔괘(복희 괘위)에서 곤은 북쪽에 있어 남쪽의 건과 마주 보며, 하늘과 땅이 자리를 정한다는 ‘천지정위(天地定位)’의 맞짝 관계를 취합니다. 곤괘 괘사의 “서남쪽에서 벗을 얻는다”는 보통 후천 방위에 비추어 이해합니다. 두 방위 체계는 각기 출처가 있으며 서로 바꾸어 쓸 수 없습니다.
토(土)에 속합니다. 경방(京房)의 팔궁에서 곤궁은 곤위지·지뢰복·지택림·지천태·뇌천대장·택천쾌·수천수·수지비의 여덟 괘를 거느립니다. 납갑에서 곤괘의 내괘 세 효는 천간 을(乙)을, 외괘 세 효는 계(癸)를 받으며, 지지는 미·사·묘·축·해·유로 거꾸로 도는 순서를 따릅니다. 실제 점에서 곤궁의 괘는 흔히 응기(일이 실현되는 시기)가 늦은 편이고 변화가 빠르지 않은 것으로 읽히며, 쌓아 가는 일이나 이룬 것을 지키는 일을 묻기에 알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