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어집

七殺(칠살)

繁: 七殺简: 七杀Qī Shā· 사주팔자

다른 이름: 偏官

칠살(七殺)은 사주명리 십신 가운데 하나로, 일간을 극하고 음양이 같은 것을 말한다.

일주를 극(剋)하고 음양이 같은 것. 압박과 위엄, 중대한 시련, 무용(武勇)의 기운을 나타낸다.

칠살(편관偏官이라고도 한다)은 일주를 극하면서 음양이 같은 오행이다 — 예컨대 갑(甲, 양목) 일주가 경(庚, 양금)에게 극을 받으면 경이 칠살이 된다. 격렬하고 거친 압박을 띠는데, 무거운 책임, 날카로운 위엄, 엄중한 시련, 군대나 경찰과 같은 엄격함으로 나타난다.

칠살이 잘 다스려지면(흔히 식신·상관이나 인성으로 제화(制化)된다) 위엄, 위기 속에서 이끄는 능력, 장애를 돌파하는 힘을 준다. 다스려지지 않으면 끊임없는 압박, 분란, 사고, 혹은 가혹한 상사를 만나는 것으로 나타난다. 옛말에 "제화되지 않은 칠살은 재갈 물리지 않은 야생마와 같다"고 하였다.

칠살이라는 이름은 비유에서 따온 것이 아니라 셈에서 나왔다. 일주의 천간을 하나로 놓고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의 순서대로 세어 나가면, 일곱째 자리가 정확히 일주를 극하면서 음양이 같은 천간에 닿는다. 갑에서 세면 경이 일곱째이고, 을에서 세면 신이 일곱째이며, 병에서 세면 임이 역시 일곱째로, 열 천간을 돌아가며 세어도 모두 이 예에 들어맞는다. 별칭인 편관도 같은 관계를 가리키되 어감이 온화할 뿐인데, 정관과 마찬가지로 나를 극하는 것이지만 바르지 않고 치우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고서는 두 이름을 함께 쓰며, 어느 쪽을 택하느냐는 글에서 강조하려는 바에 달린 것이지 가리키는 대상이 달라서가 아니다.

이름은 무겁지만 칠살을 일괄적으로 흉성으로 보아서는 안 되며, 칠살이 가장 흔히 잘못 읽히는 대목이 바로 여기다. 자평(子平) 체계에서 칠살은 그 자체로 길흉을 띠지 않고, 음양이 같은 힘이 일주를 극제하고 있다는 하나의 관계를 표시할 뿐이다. 일주에 뿌리가 있고 제화가 알맞으면 같은 칠살이 위엄과 명망, 결단력, 압박 속에서도 일을 이루어 내는 힘으로 읽히니, 옛사람은 이를 칠살을 빌려 권세로 삼는다는 뜻에서 가살위권(假殺爲權)이라 하였다. 일주에 뿌리가 없고 칠살을 상대할 것이 하나도 없을 때에만 압박에 출구가 없다고 논한다. 또 하나 유의할 점은 칠살을 재앙의 예고로 받아들이는 것 역시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십신(十神)이 그려 내는 것은 격국과 경향이며, 옛 법도 단 하나의 십신만으로 길흉을 단정한 적이 없다.

실제로 칠살을 논할 때 첫 질문은 언제나 길흉이 아니라, 사주 안에 칠살을 받아낼 무언가가 있느냐이다. 옛 법의 대처는 세 갈래다. 식신·상관으로 극제하는 것은 정면으로 맞서는 길이다. 인성으로 화하여 기운을 빼내는 것은 나를 극하는 힘을 나를 생하는 밑천으로 바꾸는 길이다. 양인(羊刃)이나 합신으로 끌어 묶는 것은 칠살이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하는 길이다. 이 셋이 모두 없는데 칠살이 월령(月令)까지 얻었을 때에야 비로소 제어를 잃었다고 논한다. 자리는 해석의 색조를 한층 더 정한다. 칠살이 월령에 있으면 대체로 환경이 엄혹하고 경쟁이 치열하다고 보고, 일지에 있으면 옛 설에서는 배우자의 성격이 굳세고 강하다고 하며, 시주에 있으면 자녀를 가르치고 다스리는 일과 만년에 지는 짐 쪽으로 기운다.

칠살과 정관은 본래 같은 극제인데, 음양이 같으냐 다르냐에 따라 두 모습으로 나뉠 뿐이다. 음양이 다르면 서로 극하는 가운데에도 끌어당기는 힘이 남아 있어 정관은 절도 있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음양이 같으면 극이 곧장 닥치고 그 사이에 조화할 여지가 없어 칠살은 거세고 사나운 모습으로 드러난다. 둘이 함께 나타나 주종을 가릴 수 없으면 전통에서는 관살혼잡(官殺混雜)이라 부르며, 대개 권한과 책임이 불분명하고 시비가 뒤얽히는 것으로 읽는다. 여러 조합 가운데 식상(식신·상관)은 칠살을 가장 강하게 다루고 인성은 칠살을 가장 부드럽게 다룬다. 살인상생(殺印相生)이 높이 평가되는 까닭도 바로 힘으로 힘에 맞서지 않고 압박을 자원으로 바꾸어 놓는 데 있다.

칠살을 제어하는 제살(制殺)과 칠살을 화하는 화살(化殺) 가운데 어느 쪽이 나은지는 전통 안에서도 정설이 없다. 제어를 중시하는 쪽은 식신제살이 가장 깔끔하다고 본다. 칠살이 극을 받으면 일주는 저절로 편안해진다는 것이다. 화를 중시하는 쪽은 인수화살이 원기를 상하지 않으면서 압박을 학문적 소양과 보호로 바꿀 수 있다고 본다. 일주가 극히 약할 때의 제살은 싸움을 걸어 놓고 이어 갈 힘이 없는 것과 같으니 먼저 일주를 북돋우는 것이 마땅하다고 일깨우는 명리서도 있다. 여성의 사주, 곧 여명(女命)의 칠살을 두고는 견해차가 더 크다. 옛 명리서는 대개 관살을 함께 남편을 뜻하는 부성(夫星)으로 보아, 칠살이 무거운 경우를 흔히 혼인이 순탄치 않다고 논하였다. 오늘날에는 그 사람이 압박과 경쟁을 마주하는 성격의 경향으로 읽는 편이며, 곧바로 혼인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칠살이라는 이름에는 짙은 군사적 어감이 배어 있는데, 이는 옛 명리서가 비유를 취하던 습관과 관련이 있다. 관은 조정의 법이고 살은 군대의 군령이니, 둘 다 질서를 다루되 수단이 너그러우냐 엄하냐가 다를 뿐이다. 이 어감은 대운과 유년을 볼 때 특히 쓸모가 있다. 칠살 운이 들어와도 옛 법은 반드시 흉으로 단정하지 않으며, 먼저 원국에 본래 있던 제화의 요소가 그 운에서도 여전히 힘을 쓰는지를 살핀다. 제화가 아직 살아 있는 상태에서 칠살 운이 오면 대개 책임이 더해지고 지위가 올라가는 것으로 읽고, 제화가 이미 사라진 상태에서 칠살 운이 와야 비로소 압박이 균형을 잃었다고 논한다.

자주 묻는 질문

칠살과 편관은 같은 것인가요?

같은 십신 관계를 가리키는 두 이름으로, 둘 다 일주를 극하면서 음양이 같은 오행을 말합니다. 편관은 비교적 중립적인 명칭으로, 정관과 마찬가지로 나를 극하는 것이되 바르지 않고 치우쳐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칠살은 어감이 더 무거우며, 극제가 곧장 닥치고 그 사이에 음양이 서로 보완해 주는 완충이 없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고서는 두 이름을 함께 쓰며, 어느 쪽을 쓰느냐는 흔히 저자가 격국상의 위치를 이야기하는지, 압박의 성질을 이야기하는지를 반영합니다.

칠살은 왜 ‘칠(七)’이라고 부르나요?

천간을 차례로 세는 데서 나온 이름입니다. 일주의 천간을 하나로 놓고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의 순서대로 세어 내려가면, 일곱째 자리가 정확히 일주를 극하면서 음양이 같은 천간이 됩니다. 갑에서 세면 경이 일곱째, 을에서 세면 신이 일곱째이고, 병에서 세면 임이 일곱째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이름 자체가 하나의 셈 규칙이며, 십신이 상징에 따라 붙인 이름이 아니라 간지의 상대적 위치에서 도출된 관계임을 보여 줍니다.

사주에 칠살이 있으면 반드시 나쁜가요?

전통에서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칠살은 음양이 같은 힘이 일주를 극제하고 있다는 하나의 관계를 표시할 뿐입니다. 사주에 칠살을 제어하는 식신·상관이나 칠살을 화하는 인성이 있거나 칠살을 묶어 두는 합신이 있고, 일주 자체에도 뿌리가 있다면, 옛 법은 오히려 위엄과 권세, 결단력, 압박 속에서도 일을 이루어 내는 힘으로 논하며 이를 가살위권(假殺爲權)이라 부릅니다. 제어와 화가 모두 없고 일주마저 약할 때에만 압박이 균형을 잃었다고 판단합니다.

관살혼잡이란 무엇인가요?

사주에 정관과 칠살이 함께 나타나면서 어느 쪽이 주이고 어느 쪽이 종인지 가릴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둘은 모두 나를 극하는 것이되 하나는 너그럽고 하나는 엄한 성질이어서, 함께 나타나면 권한과 책임이 불분명하고 시비가 뒤얽힌다고 보며, 옛 법에서는 대개 정리가 필요한 구조로 여겼습니다. 전통적인 처리 방식은 대운과 세운이 둘 중 하나를 없애고 하나를 남길 수 있는지, 곧 정관을 없애고 칠살을 남기거나(거관유살) 칠살을 없애고 정관을 남길 수 있는지(거살유관)를 살펴 격국을 맑고 순수하게 되돌리는 것입니다. 근대의 해석은 이보다 너그러워서, 대개 압박이 오는 곳이 여러 갈래일 뿐이라고 봅니다.

식신제살과 살인상생은 무엇이 다른가요?

둘 다 칠살에 대처하는 방법이지만 경로는 정반대입니다. 식신제살은 일주가 생하는 것으로 칠살을 극제하는 정면 대결의 방식으로, 전통에서는 깔끔하고 시원스럽다고 보지만 일주의 원기를 비교적 많이 소모한다고 봅니다. 살인상생은 인성이 칠살의 힘을 받아낸 뒤 다시 일주를 생조하는 전환의 방식으로, 원기를 상하지 않으면서 압박을 학문적 소양과 보호로 바꿀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예로부터 어느 쪽이 나은지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으며, 일주의 강약과 원국의 배치를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