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離卦(이괘)

繁: 離卦简: 离卦Lí Guà· 주역(역경)

다른 이름: Fire Trigram · ☲ · 火

이괘(離卦)는 주역 팔괘 가운데 하나로, 위아래로 겹치면 제30괘 이위화(離為火)가 된다.

두 양효 사이에 하나의 음효가 있는 괘. 불의 괘로 밝음·고움·둘째 딸의 상을 나타낸다.

이괘(離卦, ☲)는 하나의 음효가 가운데에 있고 두 양효가 그것을 감싸, 마치 태울 것에 붙어야만 존재하는 불과 같다. 『설괘전』에 따르면 이는 불이며, 해이며, 둘째 딸이며, 눈이며, 꿩이다 — 밝게 빛남, 무엇엔가 붙음, 바탕에 의지함을 뜻한다.

점에서 이를 보면 밝게 드러남, 알아봄을 받음, 진상이 드러남, 형태의 아름다움을 뜻한다고 본다. 그 뜻은, 밝음은 무엇엔가 붙어야 생겨난다는 데에 있다 — 불에는 땔감이 필요하고, 통찰에는 대상이 필요하다.

“불에는 땔감이 필요하고, 통찰에는 대상이 필요하다”는 말은 비유를 부연한 것이 아니라 괘 이름의 본뜻 그대로다. 이(離)라는 글자는 『주역(周易)』에서 ‘분리’로 풀지 않는다. 『단전(彖傳)』은 이 글자를 ‘려(麗)’로 풀이해 붙음과 기댐의 뜻을 취하고, 해와 달이 하늘에 붙어 있고 온갖 곡식과 초목이 땅에 붙어 있는 것을 예로 든다. 후대에 글자의 겉뜻에서 생겨난 ‘이산’의 연상은 괘 이름 자체가 취한 뜻이 아니며, 이것이 이괘를 읽을 때 가장 큰 오해다. 『설괘전』에는 따로 한 장이 있어, 이괘는 곧 밝음이고 만물이 여기에 이르러 서로를 보게 되니 남방의 괘라고 말한다. 두 대목을 함께 놓고 보면 이괘의 핵심은 불이라는 사물이 아니라 하나의 관계에 있다. 기댈 데가 있어야 빛을 낼 수 있고, 빛을 내야 비로소 보일 수 있다.

『설괘전』이 이괘에 부여한 취상(取象)은 흔히 기억되는 것보다 많다. 불과 해 말고도 번개, 갑옷과 투구, 창과 병기처럼 겉은 단단하고 속은 빈 것들이 있고, 자라·게·조개·거북처럼 껍데기는 단단하지만 속이 빈 동물들이 있다. 사람의 몸에서는 큰 배를 취하고, 초목에서는 속이 비고 윗부분이 말라 버린 것을 취한다. 이것들을 한데 놓고 보면 취상의 논리는 ‘뜨거움’이 아니라 ‘겉은 차 있고 속은 빈(外實中虛)’ 구조이며, 이것이 바로 이괘 세 효의 모양이다.

구조상 이괘는 가운데가 비어 있고 감괘는 가운데가 차 있어 두 괘의 효가 하나하나 모두 반대이니, 팔괘 가운데 가장 전형적인 착괘(錯卦) 한 쌍이다. 방위에는 한 겹이 더 있다. 후천팔괘에서 남방은 이괘이지만 선천팔괘에서 남방은 건괘이므로, 선후천의 변화를 논할 때 “이괘가 건괘의 자리에 앉는다”와 “감괘가 곤괘의 자리에 앉는다”가 흔히 나란히 거론된다. 손괘와의 관계는 생극(生剋)에 있다. 손괘는 바람이자 나무인데, 바람은 불의 기세를 돕고 나무는 불의 어미이므로, 육효점과 매화역수(梅花易數)에서 오행을 배속할 때 흔히 이 관계에 기대어 길흉을 추론한다.

점을 풀 때 이괘는 흔히 ‘보이게 됨’이라는 일을 짚어 준다. 일이 공개되고, 신분이 식별되며, 숨은 사정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이름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괘는 또 문서, 인장과 신표, 눈, 빛을 비추는 물건을 주관하며, 무엇엔가 기대야만 성립하는 모든 일도 맡는데 직위, 자격증과 면허, 협력 관계가 모두 여기에 든다. 유의할 점은 이괘의 가운데 효가 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불은 맹렬해 보여도 실은 비어 있으니, 이괘를 읽을 때 겉의 열기를 견고함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환하게 빛나는 것은 흔히 남의 땔감을 태우고 있다.

이괘를 일률적으로 길하다고 보는 것이 두 번째로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밝음에는 밝음의 대가가 있다. 비추는 동시에 비춰지기도 하며, 『설괘전』이 이괘에 부여한 창·병기와 갑옷·투구의 상은 이괘가 다툼과 방어 역시 관장함을 보여 준다. 흔히 놓치는 점이 하나 더 있다. 이괘가 밝음을 주관한다고 해서 진상을 주관하는 것은 아니다. 비추는 것은 겉면이며, 바닥까지 보인다는 보장은 없다. 점에서 이괘를 얻으면 일이 이미 떠올랐다고는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이 제대로 밝혀졌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이괘를 읽는 법은 몇 군데에서 갈린다. 첫째는 괘사 “암소를 기르면 길하다(畜牝牛吉)”의 해석이다. 유순한 덕을 길러 이괘의 굳센 밝음과 짝을 이룬다고 보는 풀이가 있고, 실제 가축을 기르는 일에 관한 점을 가리킨다고 보는 풀이도 있어, 두 설이 오랫동안 함께 전해 왔다. 둘째는 이괘와 불의 관계다. 상수학파는 이를 오행의 화로 못 박는 반면, 의리학파는 이괘가 물질이 아니라 관계, 곧 붙음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셋째, 후대의 현공풍수가 이궁(離宮)에 구자(九紫)를 배속하고 중의학이 이괘를 심장에 배속한 것은 모두 본래의 괘의 뜻 밖에 따로 세운 대응 체계이므로, 『주역』 본문과 한데 뒤섞어 보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

자주 묻는 질문

이괘는 분리를 뜻하나요?

아닙니다. 『단전(彖傳)』은 ‘이(離)’를 ‘려(麗)’, 곧 붙음과 기댐으로 풀이하고, 해와 달이 하늘에 붙고 초목이 땅에 붙는 것을 예로 듭니다. 취한 뜻이 분리와는 정반대입니다. 이괘의 요점은 ‘기댈 데가 있어야 성립한다’는 데 있어, 불에는 땔감이 있어야 하고 빛에는 비출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현대인이 ‘이’ 자의 오늘날 뜻 때문에 떠올리는 이별의 연상은 괘 이름의 본래 뜻이 아닙니다. 점에서 이괘를 얻으면 대개 일이 분명해지고 남의 눈에 띄게 된다는 뜻이지, 관계가 깨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괘를 왜 ‘중녀(中女)’라고 부르나요?

『설괘전(說卦傳)』은 건괘와 곤괘를 부모로 삼고 나머지 여섯 괘를 여섯 자녀로 봅니다. 세 음괘는 음효가 놓인 자리에 따라 맏이·가운데·막내로 나뉘는데, 손괘는 음효가 첫째 자리에 있어 장녀(맏딸), 이괘는 음효가 둘째 자리, 곧 가운데 자리에 있어 중녀(둘째 딸), 태괘는 음효가 맨 위에 있어 소녀(막내딸)입니다. 이괘의 음효가 마침 가운데 자리에 있으므로 중녀라고 부릅니다. 이는 효의 자리에 따라 이름을 정하는 구조적 규칙으로, 상을 취할 때 인간사에 대응시키는 데 쓰이며 실제 집안의 출생 순서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이중허(離中虛)’는 무슨 뜻인가요?

‘이중허’는 괘를 외우는 전통 구결에서 이괘의 효 모양을 표현한 말입니다. 이괘는 위아래 두 효가 양이고 가운데 한 효가 음이어서, 가운데 한 칸이 ‘비어’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암기법에 그치지 않고 괘를 읽는 실마리이기도 합니다. 겉은 굳세고 속은 빈 모양은 불이 사물에 붙는 것, 갑옷과 투구의 속이 빈 것, 조개와 거북의 껍데기 속이 빈 것 같은 취상과 꼭 들어맞습니다. 실제로 점을 칠 때 중허는 흔히 겉은 강성하지만 속은 실하지 못함, 또는 일에 이름만 있고 실속은 없음을 시사합니다.

팔괘 방위에서 이괘는 어디에 놓이나요?

먼저 선천과 후천을 구분해야 합니다. 후천팔괘(문왕팔괘)는 이괘를 정남에 두고 여름철과 불에 배속하며, 선천팔괘(복희팔괘)에서는 이괘가 정동에 있고 남방은 건괘가 차지합니다. 현공풍수나 양택풍수 같은 방위 술수는 주로 후천을 쓰므로, ‘이괘는 남방’이라고 할 때는 보통 후천팔괘를 기준으로 한 말입니다. 이괘의 방위를 논하면서 어느 배치를 쓰는지 밝히지 않으면 양쪽의 대응이 서로 충돌하게 됩니다.

이괘는 어떤 일을 묻는 데 적합한가요?

전통적으로 이괘는 ‘드러남’과 관련된 일에 많이 쓰입니다. 명성, 문서와 자격증·면허, 심사와 선발, 공개적인 자리, 식별되어야 하는 신분, 그리고 눈이나 조명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이괘는 ‘붙어서 의지한다’는 뜻을 취하므로, 의지하는 관계가 튼튼한지를 물을 때도 자주 쓰이며 직위, 협력, 명의를 걸어 둔 소속 관계가 모두 여기에 해당합니다. 반대로 숨겨진 일, 잠복한 일, 오랫동안 쌓아 가는 일을 물을 때에는 이괘의 참고 가치가 감추고 멈추는 것을 주관하는 감괘나 간괘 같은 괘에 미치지 못합니다.